에세이 내일을 위한 이야기

식탁에 두고 온 말

[창작 단편] 케이크를 사 들고 돌아온 저녁, 지훈은 아내의 낭독 수업이 벌써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미뤄온 약속과 식어가는 국 사이에서, 두 사람은 조금 늦은 대화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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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단편 · 등장인물과 사건은 허구입니다.

지훈은 현관 앞에서 케이크 상자를 다른 손으로 옮겼다. 비닐 손잡이가 손가락 두 개 사이를 파고들었다. 작은 케이크였지만 모서리가 상할까 봐 버스에서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왔다. 신발장 위에는 지난주에 도착한 택배 상자가 그대로 있었다. 무엇을 주문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주방에서 물 끓는 소리가 났다. 은서는 머리를 느슨하게 묶고 냉장고 앞에 서 있었다. 한 손에는 반쯤 남은 두부가 들려 있었다.

“저녁 먹었어?”

지훈은 아니라고 대답한 뒤 케이크를 조금 들어 보였다. 은서는 상자보다 그의 얼굴을 먼저 보았다.

“무슨 날이야?”

“그냥. 네가 좋아하잖아.”

은서는 냉장고 문을 닫고 식탁 한쪽을 비웠다. 영수증 몇 장과 충전 케이블이 의자 위로 옮겨졌다. 상자는 그 자리에 들어갔다. 지훈은 코트를 벗지 않은 채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오후에 보낸 제안서를 상대가 읽었다는 표시가 떠 있었다. 답장은 없었다.

상자에 넣어 온 마음

케이크 가게에 들어간 것은 퇴근길의 충동이었다. 유리창 안쪽에 놓인 둥근 케이크들이 눈에 들어왔고, 그중 하나를 고르는 동안에는 하루가 조금 괜찮게 끝나는 것 같았다. 은서가 웃는 얼굴을 먼저 떠올렸다. 왜 갑자기 샀느냐고 물으면, 요즘 신경을 못 썼다고 말할 생각이었다.

막상 집에 들어오니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케이크를 샀다는 행동이 어느 정도 대신해주기를 바랐다. 종이 상자를 식탁에 내려놓는 순간, 미안하다는 말도 같이 놓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은서는 국을 데웠고 지훈은 코트를 걸었다. 대화는 저녁을 먹었느냐는 질문에서 더 나아가지 않았다.

지훈은 작은 납품업체에서 일했다. 오래 다닌 회사를 나온 뒤 옮긴 곳이었다. 맡은 거래처가 늘어나면 형편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직은 일이 늘어나는 속도와 월급이 느는 속도가 달랐다. 집에서도 견적을 고쳤다. 식탁은 두 사람이 밥 먹는 자리였다가, 지훈이 노트북을 펼치는 자리가 됐다.

은서는 밤에 보던 드라마를 어느 때부터 이어폰으로 듣기 시작했다. 한 번은 웃다가 지훈 쪽으로 화면을 돌렸는데, 그는 숫자 하나만 확인하고 보겠다고 했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은서는 다음 회를 보고 있었다.

그는 종종 좋은 일을 약속했다. 이번 거래만 마무리되면 주말에 나가자고,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여행도 가자고 했다. 말할 때는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정이 밀리면 다음 주가 있었고, 다음 주에도 일이 생기면 다음 달이 있었다. 달력에는 여행 날짜보다 견적을 다시 보내야 하는 날이 먼저 적혔다.

은서는 그날들을 매번 따지지는 않았다. 지난달에는 혼자 전시를 보고 와서 냉장고에 엽서를 붙였다. 지훈은 그림이 좋다고 말했고, 은서는 전시장 앞 빵집에서 줄을 오래 섰다고 했다. 그 전시에 같이 가자고 했던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은 며칠 뒤에야 생각났다.

국이 식는 동안

식탁에는 두부를 넣은 된장국과 작은 반찬통 두 개가 놓였다. 케이크 상자는 벽 쪽으로 밀렸다. 지훈은 숟가락을 들다가 휴대전화 화면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다. 답장은 거래처가 아니라 배송 알림이었다.

은서가 말했다.

“이번 토요일에는 나 도서관 가.”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은서는 밥을 한 숟가락 먹고 덧붙였다.

“낭독 수업 마지막 날이거든.”

“무슨 수업?”

은서의 숟가락이 잠깐 멈췄다.

“전에 얘기했잖아. 여섯 번 듣는 거.”

그는 기억을 더듬었다. 도서관이라는 말은 들은 것 같았다. 토요일에 무엇을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런데 그게 시작도 하기 전의 계획이었는지, 벌써 다섯 번이나 다녀온 일이었는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벌써 마지막이야?”

“응.”

지훈은 언제부터였느냐고 물으려다가 그만뒀다. 달력을 꺼내 날짜를 확인하면 놓친 시간이 더 분명해질 것 같았다. 대신 수업은 재미있느냐고 물었다. 은서는 처음에는 자기 목소리를 듣는 게 어색했다고 했다. 녹음한 것을 다시 틀어보면 숨을 너무 급하게 쉬는 부분이 들린다고 했다.

“녹음도 해?”

“응. 처음에는 못 듣겠더라. 내 목소리 아닌 것 같아서.”

은서는 휴대전화를 찾으려다 밥부터 먹자며 숟가락을 들었다. 지훈은 국에 잠긴 두부를 건졌다. 조금 전까지 무엇을 물으려 했는지 잊지 않으려고, 녹음이라는 말을 속으로 한 번 더 했다.

은서는 가방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연필로 짧은 선을 그어놓은 문장들이 보였다. 어떤 단어에는 작은 동그라미가 있었다. 지훈은 그 표식들이 은서의 토요일 몇 번을 지나왔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이 노트북 앞에서 점심을 대충 먹었던 시간에 은서는 다른 곳에서 숨 쉬는 자리를 표시하고 있었다.

그 종이 위에 국물이 튈 것 같아 그는 반찬통을 옆으로 옮겼다.

잘되면, 말고

지훈은 익숙한 말을 꺼낼 뻔했다. 이번 일이 잘되면 수업도 더 듣고, 좋은 마이크도 사자고. 그 말을 하면 자신이 은서의 일을 반기는 사람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그는 입을 열었다가 종이 위의 연필 자국을 다시 보았다. 은서는 문장 중간에 그어진 빗금을 손가락으로 짚고 있었다.

“토요일에 마지막으로 읽는 게 이거야?”

“아니. 그건 연습한 거. 마지막 날에는 각자 고른 거 읽어.”

“뭘 골랐어?”

은서는 아직 두 편 중에서 고르는 중이라고 했다. 하나는 읽으면 목이 자꾸 잠기고, 다른 하나는 너무 익숙해서 빨리 읽게 된다고 했다. 어느 쪽이 좋겠느냐고 물었다. 지훈은 두 편 다 들어보지 못해서 모르겠다고 했다.

은서는 잠깐 웃었다.

“그렇지.”

은서는 종이를 반으로 접었다가 다시 폈다. 지훈이 모른다고 한 것이 대단히 실망스럽지는 않은 얼굴이었다. 그는 비어 있는 물컵에 물을 따랐다.

그는 밥그릇을 내려놓고, 오늘 들어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오늘은 목이 좀 잠겼어. 내일 저녁은?”

지훈은 곧바로 된다고 하려다가 휴대전화의 달력을 열었다. 다음 날 저녁에는 보내야 할 견적이 있었다. 몇 시에 끝날지 자신할 수 없었다. 그는 화면을 은서 쪽으로 조금 돌렸다.

“이걸 여덟 시까지 보내려고 하는데 늦어질 수도 있어. 아홉 시에 잠깐 듣는 건 괜찮아?”

“너무 늦지만 않으면. 늦어지면 먼저 말해줘.”

지훈은 아홉 시 칸에 짧게 적었다. 은서 낭독 듣기. 그 아래에 견적이 늦어지면 연락하기도 적었다.

“토요일 끝나고는 같이 듣던 사람들이랑 밥 먹기로 했어.”

“그럼 저녁에 보겠네.”

“응. 좀 늦을 수도 있어.”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토요일 칸에는 아무것도 더 쓰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저녁

밥을 다 먹었을 때 거래처에서 답장이 왔다. 제안서의 금액을 조금 조정할 수 있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지훈은 화면을 한동안 보고 있었다. 오늘 안에 답하면 성실해 보일 것 같았고, 바로 고칠 수 있다고 말하면 일을 놓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우선 확인했으며 내일 오전까지 다시 보내겠다고 적었다. 전송 버튼을 누른 뒤에도 마음이 아주 편해지지는 않았다. 상대가 다른 업체에도 같은 문의를 보냈을 것 같았다.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고도 진동이 울리는지 두어 번 손을 가까이 댔다.

은서는 케이크를 냉장고에 넣을지 물었다. 지훈은 지금 한 조각씩 먹자고 했다. 상자 안에 든 작은 칼이 잘 보이지 않아 둘이 종이 받침을 번갈아 들었다. 칼은 상자 뚜껑 안쪽에 붙어 있었다.

케이크는 생각보다 달았다. 은서는 한 입 먹고 물을 마셨다. 지훈은 좋아할 줄 알았는데 너무 단 것을 샀나 싶었다. 예전 같으면 다음에는 다른 가게에서 사오겠다고 말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그냥 너무 달지 않으냐고 물었다.

“조금. 그래도 이 위에 있는 건 맛있다.”

은서는 포크 끝으로 얇은 초콜릿 조각을 가리켰다. 지훈도 초콜릿부터 먹었다. 포크가 종이 접시를 긁는 소리가 났다.

“요즘 네 얘기를 잘 못 들은 것 같아.”

말은 생각해둔 것보다 짧게 나왔다. 은서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곧바로 괜찮다고 대답하지 않았다. 지훈은 그 틈을 채우려고 오늘 얼마나 바빴는지 설명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잠깐 기다렸다.

“응. 얘기하다가 네가 화면 보면, 나도 어디까지 말했는지 잊어버려.”

지훈은 식탁 끝에 놓인 휴대전화를 보았다. 조금 전에도 은서가 말을 시작할 때 화면이 켜지는지 확인했다. 그는 휴대전화를 일어나야 닿는 찬장 위에 올려놓고 돌아왔다.

“미안해. 지금은 더 듣고 싶어.”

은서는 내일 읽어줄 두 편 중 하나가 어렸을 때 살던 동네에 관한 글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자기가 살던 집 앞에도 비슷한 골목이 있었다고 말했다. 지훈은 그 집의 위치는 알고 있었지만, 대문이 무슨 색이었는지는 몰랐다. 은서는 초록색이었다고 했다. 페인트가 벗겨져서 밑에 칠했던 파란색이 조금씩 보였다고.

식탁 위에는 잘라놓은 케이크와 접힌 종이가 함께 놓여 있었다. 답을 기다리는 일도, 내일 고쳐야 할 견적도 그대로였다. 지훈은 은서가 골목 끝 가게 이야기를 하는 동안 빈 접시를 밀어놓았다.

식탁 한쪽이 비었다. 방 안에는 아직 노트북 가방이 놓여 있었다.

A NOTE FOR TOMORROW

오늘의 생각이
내일의 작은 변화로 이어지기를.

내일의 문장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
모든 이야기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