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내가 만든 화면에서 노래를 골랐을 것이다.
출근하는 길이었을 수도 있고, 혼자 보내는 저녁이었을 수도 있다. 어떤 노래였는지,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내가 만든 앱이 한 사람의 하루에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도 알 수 없다. 그저 누군가의 손안에서 내가 작성한 코드가 움직였다는 사실이 좋았다.
스물일곱에 음악 서비스를 만드는 회사에 들어갔다. 안드로이드 개발자였다. 아직 내가 사업을 할 사람인지,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인지 생각하기 전이었다. 우선 맡은 것을 잘 만들고 싶었다. 처음으로 내게 주어진 자리가 있었고, 그 자리에서 제 몫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일을 지금까지도 좋아한다. 여러 번 회사를 만들고 정리한 뒤에도, 돈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지난 시간을 설명하기가 가끔 어렵다. 힘들었느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 다시는 하기 싫으냐고 물으면, 그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나는 어쩌다 좋아하던 일을 두고 회사를 나왔을까. 만드는 일이 계속 좋았다면, 그 일을 할 수 있는 자리에 더 오래 남아 있어도 됐을 텐데.
첫 회사를 떠나던 무렵을 돌아보면, 일에 대한 애정과 내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은 욕심이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다. 당시에는 그 두 마음을 따로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잘하고 있다는 말이 데려간 곳
회사에서 나는 안드로이드 개발의 중심을 잡아갔다. 2년 차에 대리가 됐고 연봉도 많이 올랐다. 일을 맡기면 해내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늘었다. 나를 바라보는 내 시선도 달라졌다.
인정받는 경험은 생각보다 멀리 간다. 당장 기분이 좋은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전에는 조심스럽게 보던 일을 조금 쉽게 바라보게 한다. 예전 같으면 내가 할 수 있을까 싶던 것도 해볼 만하다고 느낀다. 내가 잘하는 일이 하나 생기면, 아직 해보지 않은 일에도 그 자신감을 가져가게 되는 모양이다.
마침 앱 시장이 커지고 있었다.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자리를 잡은 회사에서 다음 일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어딘가에서는 누군가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고 있었다. 나도 앱을 만들 수 있었다. 잘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내가 직접 시작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지금은 그 질문에 빠져 있던 것들이 보인다. 만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쓴다고 해서 돈이 남는 것도 아니었다. 함께 시작할 사람이 있다는 것과 어려워졌을 때 함께 판단할 수 있다는 것도 달랐다. 하지만 당시의 내게 가장 크게 보였던 능력은 개발이었다. 내가 자신 있는 부분을 중심으로 전체 그림을 그렸다.
그것이 전부 허황된 자신감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나는 일을 해내고 있었고, 회사에서도 인정받았다. 문제는 잘하고 있는 범위의 가장자리가 어디인지 몰랐다는 데 있었던 것 같다. 그 가장자리 너머도 비슷하게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채 기대했다.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무모했다는 말부터 하고 싶어지다가도 잠시 멈춘다. 처음 자기 능력을 믿게 된 사람의 마음을 나는 아직 기억한다. 그 마음은 얼마나 쉽게 앞으로 기울어지는가. 누군가의 조직 안에서 얻은 자신감을 들고, 그 조직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나에게는 그 일이 꽤 자연스러웠다.
만류를 들으면서도 떠난 이유
오프라인에서 알게 된 형, 친구와 회사를 만들기로 했다. 주변에서는 퇴사를 말렸다. 이미 회사에서 잘하고 있었고, 앞으로 더 좋아질 수도 있었다. 돌아보면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걱정해주는 마음을 안다고 해서 그 말을 따르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게는 욕심이 있었다. 꿈도 있었다. 남이 만든 방향을 따라 일을 잘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었다. 무엇을 만들지부터 결정해보고 싶었고, 그 결과가 내 선택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안정된 자리를 떠나는 두려움보다, 해보지 않고 지나가는 아쉬움을 더 크게 봤던 것 같다.
사람이 어떤 결정을 하고 싶어지면 그 결정의 좋은 점을 설명하는 능력도 좋아진다. 기회가 지금 열려 있다는 생각, 나는 개발을 할 수 있다는 생각, 함께할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 각각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맞는 말 몇 개를 이어놓는다고 전체 계획이 충분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그만둘 이유를 설명하면서, 나 자신에게도 같은 설명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설명을 거듭하다 보면 한 가지 선택만 내게 어울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회사에 남는 길은 그저 안전한 길, 나가는 길은 꿈을 향하는 길처럼. 지금 생각하면 회사에 남아서도 얼마든지 꿈을 가질 수 있었는데, 그때는 선택지를 조금 좁게 보고 있었다.
퇴사라는 결정에는 내 성격도 들어 있었을 것이다. 나는 대체로 내성적이다. 그렇다고 욕심이 없는 사람은 아니다. 사람들 앞에서 나를 크게 드러내는 일은 편하지 않아도, 내가 잘하는 것으로 더 큰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개발을 할 때는 그 마음이 비교적 쉽게 나왔다. 내가 아는 언어로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었으니까.
결국 회사를 나왔다. 누가 떠밀어서 한 선택은 아니었다. 그 사실은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는다.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해서 주변 상황이나 함께한 사람들에게 내 결정을 돌릴 수는 없다. 당시의 나는 원했고, 선택했다. 그 선택 안에 서툰 판단과 진심이 함께 있었다.
여섯 달이라는 짧은 문장
회사는 여섯 달 정도 만에 문을 닫았다.
이렇게 적으면 빨리 지나간다. 퇴사했고, 창업했고, 폐업했다. 그러나 내가 실제로 살았던 시간에는 문장 사이의 간격이 있었다. 처음 시작할 때 품었던 기대와 마지막 결과 사이에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면서 계속해보던 날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력서에는 적히지 않는 부분이다.
지금 이 글에서 당시의 하루를 정확히 재현할 만큼 세세한 기억을 꺼내놓을 수는 없다. 다만 시작할 때의 내가 여섯 달 뒤를 같은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원하던 일을 시작했다는 사실과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사실은 서로 다른 것이었다.
개발에는 적어도 내가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순간이 많았다. 오류가 나면 원인을 찾고, 고치고, 다시 확인했다. 물론 늘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무엇이 작동하지 않는지는 비교적 구체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사업에서는 내가 아직 묻지도 않은 질문이 나중에 문제로 돌아왔다. 모른다는 사실부터 늦게 알게 되는 영역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의 실패를 돌아보며 내가 개발을 잘하지 못해서였다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잘하는 일을 가지고 출발했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 일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 차이를 그때 미리 알았더라면 결과가 달랐을지는 모른다. 다만 준비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사실만큼은 알고 떠났을 것이다.
여섯 달 만에 끝난 회사를 내 인생에서 없었던 일처럼 지울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 일을 반드시 필요했던 값진 경험이라고 정리하고 싶지도 않다. 실패에는 실제로 잃는 것이 있다. 돈과 시간, 선택하지 않은 다른 기회가 남는다. 배운 것이 있다는 사실이 그 손실을 전부 지워주지는 않는다.
나는 이제 그 두 가지를 같이 두고 보려고 한다. 그때의 나는 원하던 일을 해봤고, 준비가 부족했고, 결과를 감당해야 했다. 거기서 배운 것도 있고 아직 제대로 바꾸지 못한 습관도 있다. 한 번의 실패가 나를 곧바로 현명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지는 않았다. 뒤에 이어진 시간들을 보면 그 점이 더 분명해진다.
내성적인 사람이 미팅에 들어갈 때
회사를 정리한 뒤에는 SI 외주 일을 하는 프리랜서가 됐다. 누군가 이미 마련해놓은 자리에 가서 내 역할만 하면 되는 방식과는 달랐다. 사람을 만나야 했고, 일을 이야기해야 했고, 나를 믿고 맡길 이유를 보여줘야 했다.
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자연스럽게 편한 쪽은 아니다. 그런데 개발 이야기를 하는 미팅에서는 조금 달라졌다. 내가 아는 것이 있었고,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 중에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모든 대화를 잘하는 사람은 아니어도, 일을 두고는 말을 할 수 있었다.
그 경험은 내성적이라는 말로 나를 너무 넓게 설명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했다. 낯선 자리에서 먼저 분위기를 이끄는 능력과 상대의 문제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능력은 같지 않았다. 내가 부족한 것만 바라볼 때는 사람을 만나 일하는 방식 자체가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쉬웠다. 실제로 해보니 나에게도 가능한 방식이 있었다.
물론 미팅을 잘했다고 일이 저절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맡은 것을 만들고, 다시 사람을 만나고, 다음 일을 해내야 했다. 그렇게 조금씩 성장했다. 어느 날 갑자기 성격이 바뀐 것은 아니다. 일을 중심에 두면 사람과 만날 수 있다는 경험이 쌓였다.
나는 지금도 그 시간이 내게 남긴 능력을 믿는다. 회사 이름이나 직함이 바뀐 뒤에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설명하는 일은 남았다. 혼자 일하는 지금도 영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에는 그때부터 쌓아온 시간이 있다. 쉽게 생긴 자신감은 아니고, 그렇다고 모든 상황에서 통하는 능력도 아닐 것이다. 다만 내가 실제로 해본 일이라는 점에서 기대어볼 수 있다.
프리랜서 생활에서는 열심히 한 만큼 수입을 늘릴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더 일하면 더 벌 수 있었다. 노력과 결과 사이의 거리가 회사에 있을 때보다 가까워진 듯했다. 하지만 수입이 늘면서 씀씀이도 커졌다. 많이 일한다는 사실이 돈을 잘 다루고 있다는 증거는 아니었는데, 그때는 둘을 자주 함께 생각했다.
지금도 아쉬운 부분이다. 당시 조금 더 모아두었으면 어땠을까. 그 후의 선택들이 전부 달라지지는 않았더라도, 급한 결정을 덜 할 수는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자주 앞으로 벌 돈으로 현재의 문제를 풀려고 했다. 내 능력을 믿는 것과 미래의 나에게 너무 많은 일을 맡기는 것 사이의 경계를 잘 보지 못했다.
좋아하는 일이 욕심과 섞일 때
그 뒤에도 나는 여러 번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결혼 후에는 카풀 서비스 회사에서 창업 멤버이자 CTO로 일했다. 지금까지 가장 열심히 일했던 시기였다. 닷새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한 적도 있었다. 회사가 매각됐고, 내 지분에 따른 돈을 받았고, 다음 사업을 하며 그 돈을 잃었다.
이후에는 또 회사를 만들고 직원들과 함께 일했다. 매출이 커지는 동안에도 돈이 남지 않는 생활이 이어졌다. 그 시간은 다음 글들에서 더 자세히 적어보려고 한다. 여기서 내가 오래 생각하게 되는 것은, 그 여러 시작 안에 같은 마음이 들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만들고 싶었고, 잘하고 싶었고, 더 크게 해보고 싶었다.
만드는 일을 좋아한다는 말은 진심이다. 그러나 그 말만으로 내 선택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돈을 더 벌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기도 했다. 다른 사람에게 성공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고 말하면 솔직하지 않을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설명 뒤에 그런 욕심들을 너무 쉽게 넣어두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더 나눠서 생각하게 된다. 어려운 것을 이해하는 과정이 좋은가. 실제로 작동하는 것을 만드는 일이 좋은가. 사람들이 내 결과물을 쓰는 것이 좋은가. 회사를 크게 만드는 것이 좋은가. 다 좋아할 수 있지만, 각각을 위해 필요한 생활은 꽤 다를 수 있다.
예전에는 그것들이 한 방향으로 함께 자라는 줄 알았다. 개발을 잘하면 더 많은 일을 맡고, 일을 잘하면 회사를 키우고, 회사를 키우면 삶도 나아질 거라고. 실제로는 어느 부분을 키우는 동안 다른 부분을 돌보지 못하기도 했다. 만들 시간이 필요해서 시작한 일이 만드는 시간 바깥의 책임으로 가득해지는 순간도 있었다.
그렇다고 이제는 모든 답을 알겠다는 뜻은 아니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일들이 있고, 나의 선택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도 있다. 다만 좋아한다는 이유를 꺼내기 전에, 이번에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물어보려 한다. 지난번과 같은 마음으로 다른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아직 남아 있는 것
처음 만들었던 음악 앱을 쓰던 사람들은 지금 다른 앱으로 노래를 듣고 있을 것이다. 내 이름을 알 필요도 없었고, 내가 나중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 궁금해할 이유도 없다. 그래도 내 손으로 만든 화면이 누군가에게 쓰였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일을 하며 얻은 것 중에 그 기쁨은 오래 남았다. 직함보다 오래 갔고, 회사보다 오래 갔다.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여전히 생기는 것을 보면, 내가 처음 좋아했던 일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이제는 그 마음만 가지고 멀리 가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쓸 수 있는 시간, 남겨야 할 돈, 지켜야 할 약속,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같이 생각하고 싶다. 그러면 예전보다 시작이 작아질 수도 있다. 내가 만드는 것이 세상에서 대단한 이름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내 생활 안에서 오래 이어갈 수 있다면, 그 일의 의미를 조금 다르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직도 만드는 일이 좋다.
이 말 뒤에 곧바로 성공할 거라는 약속을 붙이지 않으려고 한다. 대신 좋아하는 일을 오늘 어떤 방식으로 하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벌이지는 않는지, 내가 재미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시간을 당연하게 여기지는 않는지.
스물일곱의 나는 내가 만든 화면에서 누군가 노래를 듣는 것이 좋았다. 여러 번의 시작과 끝을 지난 지금도, 그 마음을 알아볼 수 있다. 이번에는 그 마음을 데리고 집에도 제때 돌아올 수 있었으면 한다.
오늘의 생각이
내일의 작은 변화로 이어지기를.



